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일을 잘한다는 건 내가 맡은 업무를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어진 일을 정확하게 하고, 실수하지 않고,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잘 끝내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경력이 쌓이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주니어를 지나 시니어라고 불리는 연차가 되면서부터는 단순히 “내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고요.
내가 직접 하는 일보다 다른 사람의 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나누고,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11년 차 마케터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연차가 올라간다는 건 단순히 경력이 하나씩 쌓이는 게 아니라, 일에 대한 책임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에 가깝다는 것을요.

1. 주니어가 실수해도 결국 시니어의 책임이 됩니다
주니어 때는 내가 실수하면 대부분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면 됐습니다.
물론 회사에서 발생한 실수인 만큼 팀 전체가 함께 해결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맡은 업무는 내가 챙기는 것이 중요했죠.
그런데 시니어가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내가 직접 작성한 문서가 아니더라도, 내가 담당하는 업무라면 한 번 더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팀원이 작성한 자료를 그대로 외부에 전달하거나, 상급자에게 보고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한 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 말이 시니어에게는 생각보다 통하지 않거든요.
결국 최종적으로 업무를 책임지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꼼꼼함과 책임감의 무게가 커집니다.
예전에는 내가 실수하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미리 발견하는 것까지 업무의 일부가 됩니다.
오히려 직접 일을 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이 한 일을 검토하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이것도 꽤 답답합니다.
‘내가 그냥 하면 더 빨리 끝날 텐데.’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내가 직접 해버리면 팀원은 성장할 기회를 잃고, 나는 모든 일을 떠안게 됩니다.
결국 시니어에게 필요한 건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일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더라고요.
2. 한 가지를 잘하는 것보다 여러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니어 시절에는 내가 맡은 업무에서 전문성을 쌓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콘텐츠를 담당한다면 콘텐츠를 잘 만들고, 광고를 담당한다면 광고 성과를 잘 관리하고, 기획을 담당한다면 기획안을 잘 만드는 식입니다.
그런데 연차가 쌓일수록 회사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조금 달라집니다.
“이건 제 업무가 아닌데요.” 라고 말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생깁니다.
물론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업무가 주어졌을 때 어떻게든 방향을 잡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마케팅이라는 일이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광고만 잘한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콘텐츠만 잘 만든다고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데이터를 봐야 할 때도 있고,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고, 개발이나 영업팀과 협업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갑자기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저는 이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에서 끝나는 것과 “해본 적은 없지만 일단 필요한 것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10년 차 전후가 되면 만능에 가까운 실무 역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대신 새로운 업무가 들어왔을 때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알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알고, 결과적으로 업무를 끝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집니다.
결국 경력이 쌓일수록 “무엇을 잘하느냐”만큼 “무슨 일이 와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3. 어느 순간부터 직접 일하는 사람에서 관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주니어 때는 내가 일을 많이 하면 됩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5개라면 5개를 처리하면 됩니다.
그런데 시니어가 되면 내 업무 목록에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직접 처리해야 하는 일보다 누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팀원을 잘 파악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잘하는 일이 다릅니다.
빠르게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있고, 꼼꼼하게 자료를 확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혼자 집중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업무를 배분할 때 단순히 “지금 일이 없는 사람에게 줘야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업무를 누가 맡았을 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까?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팀원들의 강점을 조합해서 결과를 만드는 능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또 하나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과 팀원이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했다면 이렇게 했을 텐데, 팀원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과물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수정하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다른 방식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시니어가 되면서 배워야 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4. 결국 시니어는 ‘내가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이 잘하게 만드는 사람’에 가까워집니다
연차가 쌓이면서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내가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만든 결과물 하나보다 팀 전체가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누가 어떤 업무를 잘하는지 파악하고, 업무가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도록 조정하고,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방향을 잡아주고,
필요할 때는 직접 들어가서 해결하고, 마지막에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이런 일들이 시니어에게 주어지는 업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연차가 올라간다고 일이 편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직접 해야 할 일이 줄어드는 대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집니다.
내가 잘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봐야 하니까요.
11년 차가 되어도 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11년 정도 일을 했으면 이제 회사생활이 익숙하고 모든 업무를 쉽게 처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연차가 쌓일수록 새로운 종류의 어려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주니어 때는 “이 일을 어떻게 하지?”가 어려웠다면,
시니어가 된 지금은 “이 일을 누가 하는 게 좋을까?”, “어디까지 내가 개입해야 할까?”, “팀원이 실수하지 않도록 어디까지 확인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경력이 쌓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내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그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11년 동안 일을 하면서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혼자 잘하는 능력보다 함께 잘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것.
아마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면 또 다른 어려움이 생기겠죠.
그때는 지금과 또 다른 방식으로 일을 바라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일을 오래 한다는 건 결국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바라보는 나의 역할이 계속 달라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케터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케터는 정말 외향적이어야 할까? MBTI로 바라본 디지털 마케터의 성향 (0) | 2026.09.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