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개원한 병원은 왜 간판이 비슷해졌을까?
저는 길을 걸을 때 간판을 꽤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마케팅 일을 11년 정도 하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예쁜 간판이 보이면 왜 눈에 들어오는지 궁금하고, 재미있는 문구가 적혀 있으면 어떤 의도로 만들었을까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는 예전과 조금 다른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병원 간판인데요.
특히 요즘에 제 눈을 사로잡은 간판은 새로 생긴 병원들입니다.
파란색 계열의 배경에 흰색이나 노란색 글씨가 들어가고, 큼직한 병원 이름과 진료과목이 적혀 있는 형태입니다. 밤에는 LED 조명까지 더해져 멀리서도 꽤 눈에 잘 들어옵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병원이 생길 때마다 비슷한 형태가 반복되니 어느 순간부터 궁금해지더라고요.
“요즘에 개원한 병원은 왜 간판이 비슷해졌을까?”

예전 병원 간판과는 조금 다른 느낌
생각해보면 예전의 병원 간판은 지금보다 각자의 개성이 조금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네를 걷다 보면 병원 이름을 크게 적은 간판도 있었고, 건물 외벽에 진료과목을 나열한 간판도 있었습니다.
병원마다 색깔이나 글씨체도 제각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새로 생긴 병원을 보면 묘하게 비슷합니다.
물론 모든 병원이 같은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에 개원한 병원들을 보고 있으면 파란색, 흰색, 노란색처럼 눈에 잘 띄는 색을 사용하고, 병원 이름과 진료과목을 큼직하게 보여주는 디자인이 자주 보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런 간판을 보면 굳이 병원이라는 글자를 읽지 않아도 “아, 병원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익숙한 형태가 된 것 같습니다.
병원 간판 색깔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병원 간판에는 특별한 규칙이 있는 걸까요?
의료기관의 명칭표시에는 관련 규정이 있습니다.
의료기관의 명칭이나 전화번호, 의료인의 면허 종류와 성명, 전문의인 경우 전문과목이나 전문의 자격 등을 표시할 수 있는 내용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이나 노란색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는 색상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리에서 자주 보는 병원 간판의 색깔이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더 궁금해집니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왜 비슷한 디자인이 계속 등장하는 걸까요?
병원 간판은 무엇보다 ‘잘 보여야’ 하니까
여기에는 병원이라는 업종의 특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카페나 옷가게라면 간판 자체를 독특하게 만들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수도 있습니다.
간판을 보고 “여기는 뭐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죠.
하지만 병원은 조금 다릅니다.
길을 걷다가 병원을 찾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여기에 병원이 있다”는 사실이 빠르게 전달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떤 진료를 하는 곳인지도 알아보기 쉬워야 합니다.
그래서 병원 이름과 진료과목을 크게 보여주고,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색과 조명을 사용하는 디자인이 자연스럽게 선택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특히 어르신들에게는 실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멀리서도 병원이라는 사실을 알아보기 쉽고, 진료과목도 큼직하게 적혀 있다면 복잡한 디자인보다 훨씬 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결국 병원 간판에서는 예쁜 것보다 잘 보이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마케터의 눈으로 보면 조금 아쉽다
그런데 마케팅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병원이라는 사실은 정말 잘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병원이 어떤 병원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정형외과라고 해도 병원마다 다른 점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어떤 곳은 관절이나 척추 진료에 집중할 수도 있고, 어떤 곳은 스포츠 손상을 주로 다룰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진료해온 병원일 수도 있고, 새롭게 문을 연 병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판만 보면 대부분 비슷한 정보를 전달합니다.
병원 이름, 진료과목, 전화번호.
그러다 보니 병원이라는 업종을 알아보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병원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가끔은 실제로 서로 관련이 없는 병원인데도 간판만 보면 하나의 체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물론 같은 디자인을 사용한다고 해서 실제로 체인 병원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저 비슷한 디자인 요소가 반복되다 보니 브랜드의 개별적인 느낌보다 ‘병원이라는 카테고리’가 먼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차별화가 없는 것이죠. 이 부분이 마케터 입장에서는 재미있으면서도 조금 아쉽습니다.
‘잘 보이는 것’과 ‘기억되는 것’은 다르니까
마케팅에서 브랜드를 만들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차별화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 브랜드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브랜드와 무엇이 다른지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간판을 보고 “여기에 병원이 있구나.”라고 알게 하는 것과
“아, 저 병원은 이런 곳이었지.”라고 기억하게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니까요.
물론 병원 간판에는 의료기관이라는 업종의 특성도 있고, 표시할 수 있는 정보에 관한 규정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브랜드 매장처럼 간판에 원하는 메시지를 자유롭게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재미있는 과제가 생깁니다.
제한된 정보 안에서 어떻게 우리 병원만의 이미지를 만들 것인가.
간판에서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다른 접점에서 병원만의 특징을 전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건물의 분위기나 내부 공간, 홈페이지, 콘텐츠, 의료진을 소개하는 방식 등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간판 외에도 많으니까요.
결국 간판 하나가 브랜드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길을 걷다 보면 마케팅이 보인다
11년 동안 마케팅 일을 하다 보니 이런 게 직업병인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길을 걷다가도 간판을 보고,
‘왜 이 색을 사용했을까?’
‘왜 이 문구를 이렇게 크게 적었을까?’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 이제는 한 번씩 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최근에는 새로 생긴 병원을 볼 때마다 비슷한 형태의 간판이 눈에 띄어서 저도 모르게 비교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모든 지역의 병원 간판을 조사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최근 2~3년 사이 전국적으로 이런 디자인이 늘었다고 말할 수 있는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최근 길에서 마주친 새 병원들을 보면서 느낀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예전보다 비슷한 모습의 병원 간판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에 개원한 병원은 왜 간판이 비슷해졌을까?
정말 사람들이 가장 잘 알아보기 쉬운 디자인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병원 간판에도 하나의 디자인 트렌드가 만들어진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가 하나뿐인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길을 걷다가 새로운 병원이 보이면 아마 저는 또 간판부터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마케터에게는 출퇴근길도 생각보다 꽤 재미있는 관찰 장소이니까요.